이번 인터뷰에서 댄스로그는 자작무브먼트의 안무가 김유미를 만나보았다.
올해의 신작부터 국제교류사업까지, 국내외 활동이 활발한 그녀의 행보는 어떤지, 그리고 험난한 국내 예술 생태계에서 해외로 진출하기까지의 그 과정과 그녀의 강한 의지가 돋보이는 에너지를 취재했다.

1. 독자분들에게 소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자작무브먼트 안무가 김유미입니다.
2. 대표로 활동하고 계신 한국무용단 <자작무브먼트>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개인의 창작 영역을 존중하며 스스로 만드는 집단 지성을 통해 발현되는 유연하고 포용적인 작업 방식을 지향하는 단체입니다.
자작나무를 떠올리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자작나무는 여러 지역의 많은 민족이 영험한 나무라고 생각하고 신성시했다고 해요. 천마총의 천마도도 자작나무로 그려졌다고 하네요.
개인적으로 저는 ‘불멍’을 하면서 나무가 자작자작 타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고요 속에서 말을 거는 느낌이 들거든요. 안무를 할 때 그런 몰입감을 즐기기도 하고요.
또, 결혼식 신방을 밝히는 촛불의 재료로 자작나무가 사용되어 결혼식 첫날밤을 “화촉(樺燭)을 밝히다”라고 표현하는데, 관객에게 그런 설렘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단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 21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윤회매십전>은 제작 과정에서 많은 조사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단순히 전통 소재를 차용한 것이 아니라, 매화의 윤회사상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로서의 불안과 책임감을 작품에 투영하셨다는 점이 인상적인데요.
<윤회매십전>을 창작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자작무브먼트의 창작 방향성과는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2021, 2022년은 전 세계가 코로나의 정점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한 치 앞을 모른다는 말을 실감하며 불안했었죠. 이 시기에 저는 절망감이 짙어질수록 고난 속에도 한 송이 꽃을 피울 수 있는 ‘사람’ 인간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요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이 연일 화제인데요, 이 영화의 시대 배경 속 생육신 김시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연히 국가무형유산 궁중채화 명인 황수로 화장의 기사를 보고 양산의 한국궁중꽃박물관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생명 존중과 한국 철학, 그리고 조선 선비의 탐매를 보고 윤회매에 매료되었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청빈함을 가까이 두고 삶을 열망하는 의지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매화에서 얻은 꿀, 밀랍으로 만든 매화, 조선의 지식인이 지금 우리 곁에 청년의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졌죠. 그 연약하고 아름다운 열망이 고귀하다는 것을 무대에 올리고 싶었습니다.


4.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아르코 국제교류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멕시코에서 한국무용을 선보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무용 분야에서 국제예술협력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이러한 교류가 한국무용의 정체성과 확장성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호기심이 많습니다. 궁금하면 직접 찾아가고 모르면 물어봅니다.
한국의 특질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고 지금 어디까지 소통이 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 후 2016년 박사논문 작성 과정에서 한류의 실체 분석을 통한 한국무용 가치 창출 방안을 연구하면서, 이를 실증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2024년 대만, 홍콩, 영국 그리고 2025년 멕시코 세르반티노 페스티벌을 경험하면서 한류의 최근 동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연구 가설이었던 한류의 원류는 한국의 정신문화를 기반으로 한 한국 춤의 특질을 담고 있으며 정체성을 확고히 할수록 파급적이라는 것을 몸소 느끼고 왔습니다.

5. 25년 10월, 세계적인 예술축제인 멕시코 세르반티노 페스티벌에 참여해 자작무브먼트만의 한국무용을 선보이셨는데, 현지 관객들과 직접 호흡하며 공연하시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무엇이었나요?
멕시코는 1억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중남미 중심 국가입니다. 그만큼 개인의 SNS 파급력 또한 규모가 큰데요. 국영 채널은 물론이고 개인 채널로 공연이 홍보되었고, 리트윗, 리그램 되었습니다.
멕시코 세르반티노 페스티벌이 열린 과나후아토를 비롯하여 멕시코시티 등 5개 도시 서킷 투어에서 대극장 규모의 국립, 시립극장에서 80% 이상 객석 점유율과 재관람 현상은 한국에서 초연 이후 사라지는 많은 작품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한국의 문화에 관심을 넘어 애정을 보였고, 한국 언어를 사용하고 조선 선비의 생각에 공감하려고 하는 관객들을 보면서 공연예술 콘텐츠가 단순히 한국의 홍보가 아닌 직접적인 연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6. 세르반티노 서킷 순회공연에 참여하시면서 멕시코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셨는데, 낯선 환경과 문화 속에서 한국무용을 선보이는 과정이 큰 도전이었을 것 같습니다.
공연 준비와 현지 적응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순회공연을 통해 새롭게 얻은 성취감이나 배움이 있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멕시코 시티 고도는 약 2,200m로 한라산이 1,947m인 것을 고려할 때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고산병이 올 수 있는 환경입니다. 공연장에도 의료진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중남미 의료 수준으로는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허설 중 호흡이 가빠지는 응급 상황에서 빠른 대처를 해준 한국 스태프들과 의지로 이겨낸 무용수들에게 매번 기도와 감사가 번갈아 일어나는 3주간의 투어였습니다.
체력적인 소모가 큰데도 불구하고 매번 기립박수를 받는 무용수의 저력, 각 지역의 극장 시스템이 달라도 원활한 대처로 현지에서도 세련된 무대를 연출한 스태프들에게 놀라움과 감사를 표합니다.

7. 최근 무용 공연 시장의 경향과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공연을 많이 보는 편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공연만 볼 수도 없어서 특징과 경향을 논하기에는 무리지만 전반적으로 질과 양의 충돌이 보입니다.
지원의 제작 규모가 큰 공연은 새롭지 않고, 젊은 안무가의 작품 발표는 많은데 스타일의 경향이 일원화되고 있어 참신함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외 초청 공연을 보는 것으로 우회하는데 한국에서 신작을 보이는 해외 안무가가 드물다 보니 아쉬움이 있습니다.

8. 한국무용이 전통적으로 도제식 교육을 통해 기량과 정신을 전수해 온 만큼 그 필요성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현대 무용 작품을 구성할 때 창의성과 개별 예술가의 해석 또한 중요해지고 있는데요.
창작자이자 안무가로서, 선생님께서는 전통적 도제 시스템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창의성을 확장할 수 있는 균형점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그리고 실제 작업 과정에서 이를 어떻게 조율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저는 한국무용의 도제식 교육 방법에 반기를 든 사람입니다. 7살에 무용을 시작해서 예원 학교를 입학하고 흔히 말하는 예술가 교육 시스템에서 성장했습니다.
한국무용 기본, 무용 레퍼토리는 언어를 배우는 것과 흡사합니다. 우리가 언어를 습득하면서 부모의 억양, 뉘앙스, 악센트까지 물려받는 것과 비슷하죠. 그래서 어떤 부모, 즉 스승에게서 배웠느냐에 따라 춤의 결이 정해집니다.
그 이후의 성장은 온전히 자기 몫입니다. 우리가 글을 깨우친 이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처럼 자기만의 예술 거리로 자기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창의성은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증식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모으고 버리고, 편집하면서 창의적인 활동 상태가 됩니다. 자작무브먼트는 이런 활동을 함께 하는 지성 집단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의견 충돌은 어디서든 올 수 있습니다. 주제를 명확히 해보거나, 방향을 틀어 전혀 다른 장르와 마주해 보거나 하는 방식으로 교차점을 즐기며 작업합니다.
저는 창의적인 편집 과정이 스트레스로 오지 않게 여러 분야의 호기심 촉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한국무용 콘텐츠가 국제 무대에서 상생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언어를 습득해야 합니다. 자신만의 언어를 전달하려면 그들의 언어도 이해하면서 소통해야 하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 사회에 관해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예술의 거리를 많이 모으세요. 그리고 조합하고 해체하면서 새로운 그림을 그리세요. 그리고 무대에서 실현해 보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9. 약 10년 전, 유흥 공간을 예술공간으로 바꾸는 <문화파출소>를 경찰청과 문체부와 협력하여 운영하셨던 경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이러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대학 졸업 후 시립예술단체에 입단하여 전문 무용수 활동을 하면서 2013년 석사논문으로 시립예술단체의 공공성 제고 방안을 연구하였습니다. 이때 연구 결과가 흥미로웠습니다. 관객들, 시민들은 공연 관람뿐만 아니라 예술로 여가 활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가 크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이후 2016년 문체부, 경찰청,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협력한 문화파출소 조성 사업을 4년간 운영하였습니다. 1천여 명의 시민들과 문화예술 교육, 공연, 범죄 피해자 예술 치유까지 광범위한 시민 밀착 우수예술사업 사례로, 2018 영국 건축가 디자이너 그룹 어셈블의 프란 에쥘리와 아트플레이 사이먼 스페인과 도시재생 포럼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예술교육의 확장성을 경험하였고 도제식 시스템의 제한점을 유연하게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지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10. 새롭게 진행하는 <자작무브먼트>만의 프로젝트가 있나요?
세계 최대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인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2026년 9월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윤회매십전을 국제 창제작 형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11. 내가 문체부 장관이라면 무용계에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합니다. 무용 예술 정책 또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속성을 가지고 멀리 오래가려면 제반이 튼튼해야 합니다. 일시적, 한시적 정책은 혼돈을 초래하며, 소외되는 층위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려면 전문성과 현장성을 지닌 무용 정책 기구 설립이 필요합니다. 창작-실연-연구-국제 축제를 포괄하는 정책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국가 기구가 설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2. 지금까지의 나를 무용가로 지탱해 준 원천은 무엇인가요?
저는 작업을 일기 쓰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생각에 대한 기록이죠. 그래서 10년 전 작품을 보면 얼굴이 붉어질 때도 있고, 입꼬리가 올라갈 때도 있습니다.
기록을 같이하기 위해 땀 흘린 동료가 보고 싶어서 마음이 뭉클해질 때도 있습니다. 순간을 나눈 끈질긴 노력이 저를 무용가로, 안무가로 남아있게 합니다.

13. 김유미 대표님이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예술적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목표는 매번 바뀌는 것 같습니다. 예술적으로 생동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향점이라면 삶의 위로가 되는 예술입니다. 거창한 것 같지만 소소하고 비슷한 것 같습니다. 작품에서도 묻어나듯이 “그럼에도 살만하다” 이것이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14. 한국무용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작했다면 끝을 보자.”
한국 춤은 한국 사람이 잘 출 수 있도록 DNA에 숨겨져 있습니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진정한 나를 대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완결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숨을 쉬고 내뱉으면서 한국의 정서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 춤의 묘미입니다. 저와 함께 숨 쉬고 춤을 출 수 있는 동료들이 많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15. 만약 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김유미 대표님의 무대가 끝나자마자 춤이 뭐라고 한마디를 할 것 같나요?
“고마워. 오랜 시간 동안 친구 해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