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송영선 무용단은 생성 AI 프로그램의 오류를 모티브로 기존 한국 춤의 틀을 벗어나 신체와 공간 차원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공연 <오류 & 야류>를 선보였다.
그 공연의 주역, 송영선 무용단의 대표 송영선을 만나 그녀의 춤 인생, 그리고 한국무용에 대한 시각에 대해 알아보았다.

1.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한국 창작춤을 하는 송영선이라고 합니다.
춤도 추고 작품도 만들고 가르치기도 하고, 한국 창작춤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형태로든지 발전시키고 진행할 수 있고 지속하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2. 이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워낙에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했습니다. 피겨, 체조, 발레 같은 움직임이 TV에 나오면 혼자 기억했다 따라 하거나 음악에 맞춰 혼자서 지칠 때까지 춤추고 노는 걸 좋아했었죠. 어머니가 유년기에 잠깐 발레를 했는데 제가 어릴 때도 벽에 기대 몸을 푸셨고 그걸 따라 하면서 발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또 우연히 읽었던 안나 파블로바와 바츨라프 니진스키에 관한 글들에 매료되어서 발레와 춤에 대한 환상이 있었는데, 그 환상이 예원에 입학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만난 선생님들이 너무나 유명하고 멋진 분들이고 예고 시절 무용 감상 시간에 봤던 귀한 영상 자료 속 작품에 자극받으며 계속 춤을 추게 된 것 같습니다. 평소에도 생각하는데 스승님 복이 많아서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3. 안무가 및 연출가로서 무용 작품의 창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창작 과정은 계속 변하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는 제가 일상에서 겪는 상황과 감정을 주로 표현했는데, 보통 소재가 정해지면 주제와 제목을 결정짓고 그에 따라 도입-전개-결말의 세 부분으로 장면을 구상하였습니다. 각 장면별 음악을 정한 뒤 앞 장면부터 구성해 나가면서 미리 음악에 맞는 움직임과 대형 변화를 다 준비해서 연습 시간에 무용수에게 전달했죠.
지금은 소재와 주제에 따른 컨셉을 아주 단순한 형태로 정하고 그로부터 여러 가지의 방향성을 열어놓고 리서치의 기간을 가지려 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두고 이리저리 섞어보면서 마음에 드는 흐름을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무용수들과도 열어놓는 부분, 정해서 전달하는 부분이 마구 뒤섞이는 편이고 그래서 예전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습니다.

4. 어떤 것을 통해 영감을 얻는 편입니까?
예전에는 제 일상-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작업이 많았는데, 언제부턴가 방법이 변해서 춤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열심히 작업하는 사람들과 의견을 공유하거나 혹은 제가 갖고 있는 춤의 자산을 돌아보거나 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한국 창작춤을 하다 보니 한국의 문화와 춤 자산에서 오늘의 보편성을 찾아 작업하기도 합니다.
5. 본인의 춤 또는 무용 작품만의 특징이 있다면?
춤은 주변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즉흥성과 표현성이 강하고 음악에 대한 감각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듣는 편입니다. 작품은 극장에 필요한 다양한 효과를 치우치지 않게 융합하는 점을 많이 언급해 주시고 음악이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습니다.
개인적으로 움직임을 구성할 때는 신나게 춤추는 사이에 주제 표현이나 의미가 담긴 이미지를 숨겨놓고 이를 반복하거나 변주하는 방식을 좋아하며 손을 매개로 인간관계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것을 즐겨 합니다. 또한 모든 동작에 한국적인 호흡을 통한 움직임 표현을 담고자 하며 무용수의 배치에서도 한국의 자연을 모방한 배치를 즐겨 하는 편입니다.
6. 본인의 춤에 큰 영향을 주신 스승님이 계시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까도 잠시 말했지만 저는 놀라울 정도로 스승님 복이 많습니다.
삼선교에 있는 문일지 선생님의 무용 학원에서 하루미 선생님께 춤을 배우기 시작해서 예원 예고에서 배우게 된 최현 선생님, 이홍이 선생님, 정혜진 선생님. 그리고 대학시절부터 시작해 졸업 후 25년간 몸담았던 김영희 무트댄스의 예술감독 김영희 교수님이 있죠.
김영희 교수님은 작품의 예술성 미적 완성도는 물론이고 그 자연스럽고 멋진 춤과 손 맵시, 일상에서의 부드러움과 솔직한 유머, 짧고도 명확한 판단과 피드백으로 춤추는 사람의 장점과 예술성을 드러내주시는 교수법, 인간관계 속에서 개개인의 섬세한 감정에 고민하는 모습까지 정말 너무나 많은 부분을 닮고 싶었고 배우고 싶었는데 너무 일찍 떠나가셔서 황망할 뿐입니다. 살아계실 때 조금 더 힘이 되어드리지 못하고 내적으로 늘 어린 제자로만 있었어서 가끔씩 돌아보면 죄송하고 그립습니다.
지금도 공연의 마지막 혹은 힘에 부치는 과정에서는 ‘선생님은 어떠셨는지,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를 생각하곤 하는데 그것이 때로는 안도와 자신감 혹은 저 스스로의 길을 찾는 힘이 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7. 이번 공연된 [오류&야류_Hallucination Movement Research PROJECT] 작품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두 가지인 것 같은데, 첫째는 발상의 전환이라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영상 생성 AI의 오류는 AI가 사람의 세세한 관절과 근육 신경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한 형태로만 인식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인데요.
이로부터 창작의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사고의 방식을 드러냄으로써 인공지능이 세상을 뒤흔드는 지금도 춤추는 신체는 인간 고유의 것이며 오히려 우리의 춤추는 마음은 선사시대의 동굴과 탈놀음의 난장판을 나와 다양한 차원과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디지털 세계도 피할 수 없는 변화와 흥망성쇠라는 불변의 진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흔히 기술의 세계에서 버전이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프로그램의 세대교체는 사실 인간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죠.
제가 AI 관련 작업을 2023년에 댄스 필름을 만들며 시작했는데 그동안 젠1에서 젠4로 업그레이드가 됐고 작년까지 지원되던 젠1과 젠2는 이제 서비스되지 않거든요. 프로그램이 업그레이드되는 건 너무나 빠르고 일상적이라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한 프로그램을 집요하게 쓰면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나이가 들고 세대가 교체되며 사라지는 인간의 모습과 겹쳐 보이더라고요. 마지막 장에서 알고리즘처럼 반복되는 작업과정을 설명하면서 새로운 버전과 사라지는 버전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조금 쓸쓸한 느낌으로 연출한 것은 그런 의도를 담고 있었습니다.
8. 한국 무용가로서 보람된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보람은 너무 재밌다는 관객의 피드백인 것 같습니다. 특히 처음엔 현대무용인 줄 알았는데 보다 보니 선이 다르고 느낌이 달라서 더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또 외국 공연에서 준비하는 동안은 무수히 싸우다가 끝나면 대사관이나 주최 측의 스페셜 만찬에 불려 다니느라 바빴던 김영희 무트댄스에서의 해외 공연의 순간들도 있습니다.
해외에서 우리 춤과 문화에 열광할 때도 좋습니다. 이 부분은 분명 유명 아이돌들 덕도 크겠지만, 한편으로는 중국과는 달리 어려움 속에서도 춤 유산이 사라지지 않도록 많은 선생님들이 우리의 춤을 지켜낸 일과, ‘지랄 춤’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동시대와 호흡하는 예술작품이 되도록 고민하고 만들어낸 앞 세대의 노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자부합니다.
같은 이유로 저는 김영희 선생님과 함께했던 무트댄스의 언어적 의미와 로고를 좋아하는데 우리 땅을 밟고 서서 춤의 근본을 기억하며 어머니의 용기처럼 새로움에 대한 용기를 잃지 않고 서있는 우주 속의 나를 한국무용가로서의 보람의 원천으로 항상 기억하고자 합니다.
힘든 점으로는 현직 예술가가 초중고 일반인 대상의 문화 교육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하는 사업을 수행하면서 초등생에게 한국무용 수업을 진행할 때인데 코로나가 끝난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그런지 신체활동을 매우 싫어하고 한국춤의 움직임과 음악을 지루하고 괴상하게 여기며 낯설어하는 모습을 보며 문화적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 춤 문화 교육은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9. 과거 참여했던 작품이나 현재 진행 중인 공연 혹은 앞으로 선보일 공연 작품을 공유해 주세요.
지난번 오류&야류가 경기문화재단의 경기아트페스타 쇼케이스 부문에 선정되어 현재 준비 중입니다. 올해는 큰 작업을 2개나 하다 보니 내년에는 조금 작은 규모로 다시 새로운 리서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서울무용제, 한국무용제전 대극장 경연 등에 참여했고, 2014년 댄스포럼 주최 크리틱스 초이스, 2013년 SIDance ‘Who’s next?‘, ’춤의 만유인력, 2인무’, CID-Unesco 2004 세계 음악과의 만남 등 다양한 기획 공연에 초청 및 참여하여 개인 작품을 선보였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의 지원을 통해 10회 정도의 개인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또 댄스 필름에도 관심이 있어 한 두 편 갖고 있으며 즉흥 연주자들과의 즉흥 공연, 유럽 정상 플루티스트와의 합동 공연, 미술작가와의 협업 등 다양하게 활동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10. 지금껏 고등•대학에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왔는데, 요즘 눈여겨보는 후배 무용수나 무용단체가 있으십니까?
참 많이 있고 제 주변에 저와 함께하는 무용수, 안무가 중에도 뛰어난 분들이 있지만 여기서 한두 분을 언급하기에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야기해 본다면, 최근 한두 해 본 작품 중 김현진 안무가의 <미미>와 <미세행성>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극장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기존의 무용과는 조금은 다른 결의 작업을 하는 안무가인데 저는 이 친구의 작업을 볼 때마다 음악이 주가 되기를 꺼리고 가구와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랐다는 ‘에릭 사티’가 생각납니다.
이 안무가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 빛과 소리와 오브제를 통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며, 그가 꾸민 공간에서 움직임은 정지에 가깝게 수렴되지만 그 미세함이 작품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이고 강력한 수단이 됩니다. 그리고 관객은 공간과 움직임 사이를 배회하며 공간의 일부로서 움직임을 감각하는데 그 방식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유진 안무가의 <마니산>은 패스트패션의 쓰레기장으로 전락한 한 섬의 비극을 작품화했는데 한국 창작춤 안무가로서 주제에 충실한 접근과 표현이 앞으로를 기대하게 됩니다.
이외에 발레의 이해니 안무가의 최근 작업 <판옵티콘>, 박수윤 안무가의 댄스포럼 최우수작품을 흥미롭게 봤고 퍼포머로는 제 작업에 여러 차례 함께 해온 박주현 김혜윤 이민주 이수연 김재은 무용수들의 다채로운 매력이 앞으로 더 많은 곳에서 드러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11. 한국무용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춤은 당연히 열심히 춰야겠지만 그 외에 인문학적인 소양을 많이 키울 수 있게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합니다. 다른 어떤 예술보다 춤은 생각의 깊이가 감출 수 없이 몸으로 드러나서 그런 것들이 습관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학교 등의 교육기관에서의 커리큘럼이 잘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한국무용사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다양한 춤들을 보고 관찰하기를 권합니다. 우리 춤은 역사가 오래된 만큼 매우 다양한 층위가 존재하는데 학교에서 이 모든 걸 커버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술기록원이나 유튜브 등을 활용하여 우리 춤의 많은 자산에 익숙해지길 권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보면 한국무용을 계속하면 그저 춤만 추거나 창작에 관심이 있으면 한국무용의 고유성에 대한 고민을 버리고 컨템포러리에 보다 중점을 두는 경향이 좀 안타까운데, 세계 무용사와의 비교 속에 우리 춤을 연구 탐색하여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우리 춤 속에서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12. 한국무용의 대중화, 세계화 또는 어떠한 형태로서의 발전을 위한 비전을 함께 공유 부탁드립니다.
전 세계 어딘가에 콜드플레이의 콘서트만큼, K-pop 만큼 격렬한 환대를 받는 무용 공연이 과연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애석하게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중화가 맞을까라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해봅니다.
개인적으로 한국무용을 포함한 순수예술은 슴슴한 건강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은 걸 알지만 진짜를 알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그래서 내부적인 예술성의 확보도 필요하지만 일반 대중이 그에 대한 깊은 소양을 함양할 수 있는 다양한 깊이의 교육 과정이 필수적이라 생각합니다.
13. 무용 세계에 존재하는 자신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해달 혹은 보노보라고 생각합니다.
해달은 그저 바다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사는 평화로운 동물로 알고 있는데 큰 욕심 없이 좋은 사람들과 미역 줄기 같은 걸로 꽁꽁 엮여서 좋은 작품을 만들며 지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보노보 역시 집단생활을 하는 유인원이지만 무리 내 갈등이 생기면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무용 세계에 존재하기보다는 일상의 삶 속에서 무용을 통해 보노보 같은 존재가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