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댄스로그에서는 안무가 김현선을 만나 보았다.
전통 춤의 깊이와 창작의 자유로움 사이를 오가며 자신만의 춤 세계를 구축해 온 그의 예술 여정과 삶의 경험을 움직임으로 풀어내는 김현선만의 무용 철학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1.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선입니다.
Dance us project를 이끌고 있고, 전통 춤이 가진 깊이와 창작이 지닌 자유로움 사이를 오가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2. 처음 춤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당신에게 춤은 어떤 존재였으며, 현재 무용가로서 마주하는 지금은 그때와 어떻게 달라졌나요?
처음 춤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어린 시절, 유치원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머니 손을 잡고 무용 학원 발표회를 보러 갔던 날, 무대 위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화려한 조명, 색색의 의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어린 저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나요.
그날의 감동이 잊히지 않아 어머니께 계속 조르다시피 해서, 결국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무용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어릴 적 저는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어요.
그래서인지 방문을 걸어 잠그고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은 채 혼자 춤을 추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때의 춤은 저에게 친구 같은 존재였던 것 같아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온전히 저만의 시간과 언어였죠.
지금도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춤은 저에게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이고, 그 맥락 안에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이 길을 놓지 않고 걸어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3. 김매자 선생님과의 인연이 깊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김매자 춤 연대기’부터 이번 ‘창무예술원 무용 예술상’까지, 선생님께서 당신의 예술 인생에 어떤 길잡이가 되어주셨는지 궁금합니다.
김매자 선생님은 제가 이화여대 시절 한국무용사 수업 교재 표지에서 처음 뵈었던 분입니다.
그때만 해도 선생님이 어떤 춤의 세계를 가진 분인지 깊이 알지 못했어요.
대학 졸업 후 최지연 선생님과 인연이 닿아 함께 작업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창무회 공연에 객원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비로소 선생님의 존재를 실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창무회 작품을 하나둘 하면서, ‘아, 이대에서 배웠던 춤의 뿌리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던 것 같아요.
그것이 저와 선생님 사이의 진짜 시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선생님의 춤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작년부터 ‘숨’, 김매자류 살풀이, 춤본 등 선생님의 대표 솔로 레퍼토리를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창작 춤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 그리고 안무가로서 제가 지켜야 할 중심이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제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야 선생님 춤이 지닌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 것 같고 그래서 지금 이 시기에 선생님의 춤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저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4. 본인의 무용 인생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이 확실한 김현선만의 춤 세계를 구축하는 데 영향을 준 ‘복미경 선생님’은 어떤 존재인가요?
복미경 선생님은 제가 무용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원동력을 주신 분입니다.
춤에 대한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시절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선생님과 함께 춤을 추면서 춤을 대하는 자세, 어떤 마음으로 춤을 춰야 하는가, 그리고 춤에 대한 진정성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결국 춤에만 국한되지 않고,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죠.
그래서인지 선생님과 저는 단순한 사제 관계를 넘어, 인생의 동반자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춤이라는 매개로 이어진 인연이지만, 그 안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느껴요.
선생님은 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 늘 응원하고 지지해 주시고, 힘든 순간에도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시는, 저에게는 그런 존재입니다.

5. 2025년 4월 한국무용제전에서 초연한 ‘이방인들’은 어떤 고민에서 출발한 작품인가요? 특히 이방인을 타자가 아닌 ‘일상의 낯섦’으로 정의하셨는데, 이 지점이 외국인 무용수가 출연하게 된 계기인지, 그리고 안무가님이 바라보는 낯섦이란 어떤 의미인지 함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제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습니다.
아이를 낳고 프랑스로 삶의 터전을 옮기면서, 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정체성을 마주하게 되었어요.
더 이상 무용가 김현선이 아니라, 낯선 땅에서 그저 한 명의 동양인이자 엄마로 존재하는 김현선이었죠.
그 삶 자체가 제가 처음 온몸으로 경험한 낯섦이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제가 바라보는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익숙했던 것들조차 새삼 낯설게 다가왔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마저도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저는 낯섦이라는 것이 단순히 이질적이고 불편한 감정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는 가능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외국인 무용수가 출연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어요.
‘이방인들’이라는 제목처럼, 작품 안에 실재하는 이방인의 존재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사실 제전을 준비할 당시 저는 어떤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예술가였고, 그런 제가 제전 같은 경연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었어요.
제가 함께한 무용수들 역시 각자 다른 인연으로 만나게 된, 통일된 움직임의 언어를 갖지 않은 이들이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메소드로 춤을 추는 무용수들이었죠. 오히려 그 지점이 ‘이방인들’이라는 주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확신을 갖고 밀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움직임의 스타일이 모여 결국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 과정을 통해, 낯섦과 이질감 속에서도 결국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6. 창무 국제 공연 예술제 공식 초청과 제32회 무용 예술상 작품 연기상 수상까지, 초연 이후 ‘이방인들’은 어떻게 깊어졌나요? 몸짓과 언어, 존재와 흔적 사이의 어긋남을 움직임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붙잡은 신체적 감각은 무엇이었는지도 함께 들려주세요.
‘이방인들’은 초연 이후 창무국제공연예술제에 공식 초청되었고, 이듬해에는 한국무용제전의 폐막작으로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무대에 오를 때마다 아쉬웠던 장면들을 하나씩 수정하고 다듬어가는 과정을 거쳤고, 그렇게 거듭된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마지막 버전이 가장 완성도 높은 형태로 남게 된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조금 어려운 질문이네요.
정확한 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안무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체적 감각은 ‘움직임과 표현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품고 즉흥적으로 몸을 움직이다 보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표현이 생겨나고, 그 표현은 다시 에너지로 이어지거든요.
그래서 춤을 출 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에너지’입니다.
에너지가 없는 춤은 살아있는 춤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춤은 관객에게 결코 전달될 수 없죠. 저는 그 에너지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그 안에 제가 지닌 움직임의 철학, 나아가 저의 삶 자체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믿습니다.
다만 그 에너지를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내공과 끊임없는 수련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 사운드 디자이너인 남편분과의 작업은 부부로서, 또 예술적 동료로서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 시간이었나요?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삶 속의 낯섦을 어떻게 새롭게 받아들이길 바라시는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방인들’의 음악은 남편이 맡아주었습니다.
남편 역시 한국에서 이방인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제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작품이 어떤 감정과 정서를 표현해야 하는지 이미 깊이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서로 다른 언어로 작업하지만, 같은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앞으로도 안무가로서 작업을 이어 나가는 데 있어 남편은 저에게 가장 든든한 음악적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KIM LAVAYSSE’라는 이름으로 무용과 음악이 결합한 창작 듀오 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제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낯섦이 단지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낯섦은 새로운 시도의 시작점이 될 수 있고, 그 낯섦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것과 공존하며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8. 전통 춤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즉흥 춤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데, 전통의 호흡을 즉흥이라는 틀 안에서 어떻게 작품으로 녹여내고 계시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제가 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즉흥의 순간에 드러나는 에너지와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 즉흥이 힘을 가지려면, 결국 그 바탕에 탄탄한 전통의 호흡이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즉흥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몸에 깊이 새겨진 전통의 호흡과 감각이 자연스럽게 풀려나오는 과정에 가깝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정재무부터 민속춤, 신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통 춤을 계속 수련하고 있습니다.
어릴 때 배웠던 춤과 지금 다시 배우는 춤은 같은 동작이라 해도 그 깊이가 전혀 다르게 느껴져요.
어렸을 때는 형식과 동작을 익히는 데 집중했다면, 지금은 그 안에 담긴 호흡의 의미와 정서, 그리고 그것이 제 몸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렇게 쌓인 전통의 층위들이 결국 제 즉흥 작업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준다고 생각합니다.
9. 해외 활동을 하며 스스로 한계를 넘기 위해 가장 애썼던 부분이나 특별히 공들인 노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역시 가장 큰 벽은 언어였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언어는 저에게 넘어야 할 산이에요.
예술적인 표현이야 몸으로 어떻게든 소통할 수 있지만, 일상적인 대화나 작업 과정에서의 세밀한 소통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더라고요.
그래서 해외 활동을 이어가면서 언어는 늘 제가 가장 많이 부딪히고, 지금도 계속 애쓰고 있는 부분입니다.


10. 해외 페스티벌 첫 초청작이었던 ‘얼음못’의 제작 뒷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그 작품이 김현선의 무용 여정과 예술 행보에 어떤 이정표가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2018년에 만든 ‘얼음못’은 서울 국제 댄스 페스티벌 인탱크에서 초연했고, 이듬해 프랑스 ‘Mouvement sur la Ville’ 축제에 초청되며 저의 첫 해외 초청작이 되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혼자 힘으로 안무가로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했어요.
거기다 인생의 큰 상실을 겪으며 한동안 슬럼프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얼음못’은 그런 어렵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지나며 완성한 작품이에요. 그런 작품이 해외 무대에 초청되어 선보일 수 있었던 경험은, 저에게 다시 창작의 길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와 시작점을 준 소중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11. 해외에서 생활하며 경험한 낯선 환경이 무용가 김현선의 삶과 춤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해외 생활은 저에게 역설적으로 ‘우리 것’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스스로를 계속 증명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저는 자연스럽게 저만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제가 지닌 고유함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세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유니크함이야말로 세계 무대에서 관객들의 관심을 끌어낼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을 작품으로 풀어내야겠다는 방향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12. 2020년 ‘괴물 조리법’ 초연이 지닌 예술적 가치와 장점들을 발판 삼아, 2022년에는 지원금을 받으면서 재창작 무대를 올리셨습니다. 특히 뱃속의 아이와 함께 ‘욕망과 고찰’이라는 주제를 풀어내셨는데, 임신한 몸으로 무대 위에서 그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할 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괴물 조리법’은 인간의 욕망을 주제로 한 관객 참여형 이머시브 공연입니다.
당시 저는 임신 8개월 차였는데요, 기획부터 연출, 안무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소화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쉽진 않았어요.
돌이켜보면 어려움보다는 즐거움이 더 컸던 작업이었어요.
제가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형식과 주제를 마음껏 시도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만삭의 몸으로 마지막 장에 출연했습니다.
슬라임을 온몸에 뒤집어쓰는 장면이 있었는데, 하필 12월 겨울 공연이라 정말 추웠던 기억이 나요.
이 작품에서 인간의 욕망은 여러 형태로 존재하는데, 그 다양한 욕망을 각기 다른 이미지로 형상화했고, 마지막에 만삭의 몸으로 등장한 저의 모습은 또 다른 욕망덩어리가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는 하나의 암시를 담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공연을 본 몇몇 관객분들이 그 장면을 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셨다는 후기를 전해주셨는데, 그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아요.
또 돌이켜보면 아이와 함께 무대에 오른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저에게는 더없이 뜻깊은 작업이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그 시기에만 가능했던 유일무이한 작품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13. ‘Dance us project'(김현선 안무가가 이끌고 있는 무용 단체) 무용수들과 공연을 함께하며 느끼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한국 무용제전이라는 무대가 경연 작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보니, 다른 팀들과 비교 아닌 비교 의식을 하게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다른 팀들은 오랜 시간 함께 호흡을 맞춰온, 같은 스타일을 공유하는 단체들이었을 텐데, 저희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무용수들이 모인 팀이었으니까요.
솔직히 걱정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지점이 오히려 저희 작품의 주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이방인들’이라는 작품처럼 서로 다른 존재들이 모여 하나의 무대 위에서 낯섦을 딛고 조화를 이루어내는 과정 그 자체를, 우리 무용수들과 저는 실제로 살아내고 있었던 셈이죠.
그래서 저는 이 무용수들에게 늘 깊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그저 안무가 김현선이라는 사람 하나만 보고 모여 함께 준비해 준 이들이니까요.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 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를 세심하게 살피고, 무대 위에서 흔들리는 순간엔 자연스럽게 서로를 끌어주며, 마치 자신의 작품인 것처럼 함께 고민하고 애정을 쏟아주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늘 같은 생각을 합니다.
‘내가 더 잘해야겠다. 이 무용수들에게 좋은 결과로 보답해야겠다.’
그런 마음이 항상 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쏟는 진심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무대 위의 에너지는, 안무가인 제가 아무리 정교하게 구상한다 해도 혼자서는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종류의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Dance us project는 단순한 무용단이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있음으로써 비로소 완성되는 하나의 작은 세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4. 최근에 공연하셨던 ‘춤길, 함께 거닐다’에서 한영숙류 살풀이춤을 통해 자신을 내려놓고 비워내는 전통 춤 퍼포먼스를 보여주셨습니다. 전통을 대하는 본인만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전통 춤은 저에게 여전히 정말 어려운 영역입니다.
창작 작품에 비해 전통 춤으로 무대에 서는 횟수는 많지 않지만, 설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늘 같아요. 정말 어렵다는 것.
도대체 얼마나 더 무대에 서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순간이 올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매번 내리는 결론은 같습니다. 아직 멀었다. 멀고도 멀었다는 것이요.
왜냐하면 전통 춤은 화려한 기교나 표현으로 완성되는 춤이 아니라, 제 안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드러내야 비로소 진짜 모습이 보이는 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저라는 사람 자체가 채워지고 또 비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전통을 대할 때 늘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오래 배우고 무대에 서도, 전통 춤 앞에서는 항상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어려움 자체를 전통을 대하는 태도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완성했다고 자만하는 순간 전통은 더 이상 살아있는 춤이 아니라 그저 형식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에게 전통이란 평생을 두고 다가가야 할 대상이자, 계속해서 저 자신을 비추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그 어렵고 먼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 그것이 제가 전통을 대하는 철학입니다.

15. 그동안 보여주신 행보는 경계에 머물기보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평을 찾아 나가는 모습이었습니다. 무용가 김현선이 스스로 정의하는 ‘예술가 김현선’은 어떤 모습인가요?
저는 스스로를 특별히 대단한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제 삶에서 마주하는 것들 이방인으로서의 낯섦, 임신한 몸, 소통의 장벽, 상실의 시간 등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몸에 담아 무대 위로 가져오려는 사람이라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창한 메시지보다, 제가 직접 살아낸 것들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것. 그게 저라는 사람이고, 제 춤인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제가 만들어온 작품들은 결국 제 인생의 굴곡과 같은 선 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느끼는 감정이나 경험이 저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믿어요.
제가 느낀 것을 정직하게 풀어낼 때, 그것이 결국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도 맞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문제나 인간의 존재, 그리고 본질적인 것들에 계속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결국 우리는 모두 한 인간으로서 비슷한 것을 느끼고 경험하며 살아가니까요.
저는 그런 인간 보편의 감정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이슈들을 제 춤으로 다루고 싶습니다.
16. 무대를 통해 매번 대중들과 만나며 한국무용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있다고 느끼시나요? 수많은 도전을 하셨음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작업을 이어가게 만드는 당신만의 창작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한국무용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에 변화가 있다고 느끼냐는 질문에는 조금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있어요.
저는 대중성이라는 것에 대해 다소 조심스러운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순수예술은 태생적으로 대중성과는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중성이 지나치게 개입되는 순간, 오히려 그 예술이 지닌 본질이 흐트러질 수 있다고 느낍니다.
클래식 음악이나 현대 음악처럼, 각 분야에는 그 예술을 깊이 사랑하고 향유하는 마니아층이 존재하잖아요.
저는 한국무용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대중적인 장르가 되기보다는, 한국무용이 지닌 깊이와 본질을 알아보고 진심으로 좋아해 늘 다양한 결의 마니아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커요.
다행히 요즘 한국무용 장면에는 스타성을 지닌 무용가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고, 그 흐름을 보면서 이제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는 기대도 듭니다.
그리고 저를 계속 새로운 작업으로 이끄는 원동력은 결국 제 삶 자체인 것 같아요.
제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감정과 질문들을 정직하게 무대 위로 옮기는 일이 저에게는 창작이고, 그 과정에서 제가 느낀 것들이 누군가에게도 닿을 수 있다는 믿음이 저를 계속 움직이게 만듭니다.
거창한 사명감보다는 제가 살아낸 것을 솔직하게 나누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제 창작의 가장 큰 원동력일 것 같습니다.
17. 춤을 통해 도달하고 싶은 예술적 목적지, 혹은 끝까지 지키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는 춤을 통해 어떤 완성된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다기보다
매 순간 진정성을 잃지 않고 소신 있게 저 자신을 보여주는 춤을 추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유일한 가치예요.
18.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7월의 어느 날, 관객들에게 무용가 김현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화려하게 기억되기보다 오래도록 진심으로 남는 무용가,
그런 사람으로 관객들의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