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민이 만난 무대 위의 예술가 2」

이번 인터뷰에서는 댄스컴퍼니 <더 붓>의 수장이자 안무가인 변재범을 만나보았다.

<더 붓>을 창단한지 올해로 10주년이 되는 2026년, 새해를 마주하는 그의 비전과 춤을 사랑하는 마음, 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더 붓 컴퍼니’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무용가 변재범입니다.

어린 시절 친구와 함께 브레이크 댄스를 접하게 되었는데, 남들 앞에서 춤추는 것이 부끄럽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동네 형들과 어울리면서 대회에도 참가하게 되었고 수상을 하며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국악을 전공하는 친누나들의 권유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한국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학업을 하면서 욕심이 생기고 목표로 이어지면서 한예종에 진학하여 깨지고 부서지며 춤추던 시간들이 쌓여 안무를 하고 무대를 구성하는 과정까지 오게 되었네요.

사실 제가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에 특별히 인지하고 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춤이 좋아서 몸이 머리보다 먼저 반응했던 것이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작업과정은 매번 다른 방식으로 다양하게 시작됩니다.

평상시에 순간순간 잡다하게 끄적여 놓았던 안무 노트 속의 이야기들이 주체가 되는데요. 정해진 주체를 가지고 머릿속에 있는 표현하고자 하는 소재들을 펼쳐놓고, 주위의 환경이나 일상들, 전시나 영화관람 등 소재들과 어떻게 매칭되어야 춤으로 무대에 펼쳐졌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가지치기를 해나갑니다.

때로는 산에 가서 직접 특이한 모양의 나무를 수집해서 나무를 통해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일상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주체와 연결시키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우선 뼈대를 세우고 다양한 영양소들로 살을 입히듯 나만의 방식을 통해 움직임으로 또 무대 전체로 확장 시키는 과정을 가집니다.

영감이라고 하시니 대단한 예술가인 듯 거창하게 느껴지는데요.

저는 그저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작품의 주제이고 소재입니다. 특별한 철학적인 메시지보다는 일상 속의 대화에서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들을 몸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작품에 대해 생각을 시작하면 아이들의 이야기도 흘려듣지 않게 되더라고요.

결국 생각해 보면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시발점이 작품에 대해 깊이 파고들게 되는 근원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서울예술단은 총체적 예술을 추구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대본을 보고 해석하는 연습이 제가 작품에 주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데에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을 창작하거나 구상할 때, 가극 팀이 이야기하는 대사와 연극적 요소들의 표현을 어떻게 하면 춤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또한 음악이 주는 힘의 파장성을 느끼고 그 힘을 어떤 방향으로 저의 작품에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도 깊었습니다.

서울예술단은 총체극을 주로 무대에 올리기 때문에 전체적인 무대미술과 연출이 확장된 방식입니다. 덕분에 무용이 아닌 다른 장르의 작업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한계를 두지 않는 실현 방법들에 대해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작품을 진행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작업을 하면 할수록 부수적인 요소들로 관객들을 이해시키기보다는 춤 자체가 가지는 본질로서 관객과 호흡하는 것이 제가 해야 할 몫이고 추구하는 방향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다른 장르와의 다양한 경험을 거름 삼아 춤의 본질로서 무대에 펼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정진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한국무용 전공이다 보니 한국 춤의 호흡과 춤사위를 뼈대로 잡습니다. 여기서 발전하여 전통적인 동작 속에서 확장되고 탈피된 움직임들을 통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한국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특징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토대를 뿌리 삼아 작품의 주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보는 이들이 관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작품이 추구하는 본질적인 목표입니다.

결혼 후 급변한 삶의 방향에서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모든 것을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춤에 대한 시간들 또한 나를 향한 것이 아닌 타인과 주변 환경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내 춤에 대한 만족을 위해 시간을 보냈다면 결혼 이후 내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하여 사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춤을 잘 추는 것보다 나의 움직임이 함께 호흡하고 공유되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하고 갈구하였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서류를 넣었고, 감사하게도 젊은 안무가 전에 선정되어 첫 단체를 꾸리고 첫 작품을 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스승님에 대한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중 춤에 영향을 주신 스승이라고 말한다면 최근 국립무용단 거장의 숨결이라는 공연을 올리신 김현자 교수님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처음 한국 춤에 입문하게 되어 김장우 선생님께 고등학교 시절 지도를 받고 대학을 와서는 김현자 교수님, 정승희 교수님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그중 김현자 교수님께서는 ‘숨 기본’을 기본으로 춤의 움직임에 대한 정확한 토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한 교수님의 작품세계를 눈과 몸으로 쫓으며 예술적 사고를 통한 한국 춤과 춤의 본질, 그것을 바라보는 눈, 예술을 대하는 태도 등 큰 가르침을 계속해서 주셨습니다. 근본에 충실하라는 격려의 말씀과 교수님의 축적된 경험들을 직간접적으로 익히며 현재도 계속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정말 깊은 슬픔을 ‘숨 = 삶’이라는 동양 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울음의 정원>이라는 공간에 풀었습니다. 억눌린 감정과 그 치유의 과정을 ‘울음’이라는 행위의 상징적 의미를 담아 표현한 작품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행했을 ‘울음’이라는 행위가 호흡의 순환 구조(들숨-고요-날숨-회복)를 통해 만인에게 공감되기를 소망한 작품입니다.

살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 저는 제 안의 깊은 동굴로 들어갑니다. 깊은 슬픔을 토해내다 보면 내 안의 나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혼자 소리 내어 울고, 제 나이나 위치나 상황을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맘껏 힘들어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문득 누구나 마음속에 그 감정들을 토해내는 자기만의 내면의 장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흘린 눈물과 토해낸 감정과 울분들이 모여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지난날을 회상했을 때 그 또한 나에게 자양분이 되는 고통이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히스토리가 꾹꾹 눌러 담겨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고통을 토해내는 장소이지만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눈물과 고통이 모여 꽃을 피운다고 상상해 보았습니다. 누구나 좌절과 고통이 있고 그런 것들을 이겨낸 다음에 비로소 진정한 나로 성장해 인생의 꽃을 피우니까요. 그래서 작품 제목을 ‘울음의 정원’이라고 지었습니다.

모두가 자기 안의 울음의 정원이 있습니다. 홀로 어두운 터널에서 힘들어하지 마세요. 힘들면 울어도 됩니다. 당신의 눈물이 당신의 마음속 울음의 정원에 꽃들을 피우게 할 것입니다. 그 꽃들은 만발하여 시간이 지나고 당신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지 않을까요?

좌절과 슬픔, 그리고 고통과 인내는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용기와 힘을 준다는 것을, 그리고 나만의 히스토리가 되어 내 인생을 더욱 반짝이게 할 것이라는 것을 관객과 울음의 정원을 통해 나누고 싶었습니다.

당연 가장 힘든 순간은 작업 과정에서의 창작의 고통입니다.

또 보람된 순간은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이 작품을 공감해 주시고 다양한 관점에서 감상해 주셨을 때입니다. 또한, 함께 작업의 시간을 가졌던 더 붓의 무용수, 스텝들과 그 순간순간들을 함께 호흡함을 느낄 때 무엇보다 벅찬 순간을 마주합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서 무대 위의 감정과 에너지를 함께한다는 것은 저에게 한국 무용가 이상의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2026년은 ‘더 붓’이 활동한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10년 동안 작업한 과정들을 동료들과 여러 가지 생각을 나누면서 다음 작품을 구상 중입니다. 시도해 보고 싶은 것은 많은데 이제는 우리 단체만의 색이 정확한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가장 ‘더 붓’다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본질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작품을 마주하는 저의 마음, 그리고 더 붓 단체의 색채가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맞겠습니다.

과거 참여했던 작품 중에는 키네틱 작가인 최우람 작가님과의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주최하고 현대차에서 후원하는 프로젝트였는데요. 너무나 좋은 기회로 함께 하게 되었는데 많은 미술관 관람객들이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고 관람을 하는 모습에 많이 놀랐습니다. 기존의 프로시니엄 무대가 아닌 공간에서 관객 이동형 공연을 하며 함께 호흡했던 점, 그리고 설치미술과 무용의 콜라보가 작품이 전시된 장소에서 춤을 추는 개념이 아닌 미술관의 공간을 무용수들이 누비며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이동시키는 새로운 장르의 공연예술을 만들었다는 점이 새로운 시도였고, 저 또한 무대예술인 춤의 확장성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뜻깊은 작업이었습니다.

관객들이 각자 다른 해석을 가지고 관람하는 모습에 많이 배우고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움직임이 안무가 되고 공간에 펼쳐지며 주위의 모든 사물 또는 관객, 공간이 가지는 의미 등과 상응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다양한 방향으로 고민하는 시초가 됐던지라 제 마음속에 간직하는 작업 중 하나입니다.

멋지게 활동하며 본인들의 예술관을 찾아가는 모든 후배들을 응원합니다. 저 또한 계속 배우고 성장하는 중이고, 함께 동료가 되어가는 그들에게 지치는 순간이 오더라도 끝까지 동행하자고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게 틀린 일이 아니니 지금 주어진 일을 하나씩 최선을 다하다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만의 길이 보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저에게 하는 조언이기도 하겠네요. “우리 함께 가자”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한국무용의 대중화’라는 말보다는 저변 확대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k-pop 홍보예산과는 숫자에서부터 너무나 큰 차이가 납니다. 순수 예술로서의 한국무용의 가치가 공유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대중매체나 SNS를 활용하여 대중들에게 한국무용의 이미지 정도를 알린다고 해서 대중들이 무용 공연을 보러 오기 위해 티켓을 예매하고 극장에 온다는 것은 한순간에 유행처럼 번졌다가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양한 디지털 소스를 통해서 대중화와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들이 계속 무용계에 지속되기 위해서는 연령대와 사회적 이슈들을 넘어선 저변 확대를 이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변 확대에 기반이 되는 첫걸음은 우리 문화의 가치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교육을 통해 체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nimdance/224194236620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위로 스크롤